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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생활

김연경선수 키작았던 그녀 올림픽국가대표 배구선수 되기까지

by 달달한 강냉이 202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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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선수가 2020도쿄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 의사를전했다. 김연경선수은퇴전이 될수도있는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르비아에게 패하여 아쉽게도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만약 국가대표 배구선수은퇴를 하더라도 국가대표은퇴와 무관하게 그녀가 쌓아온 선수이력은 많은 이들의 뇌리속에 오래도록 박혀 있을정도로 대단한 것이라 생각된다. 비록 패하여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올림픽 시합내내 보여준 김연경 선수의 저력은 "아, 이래서 김연경, 김연경하는구나." 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기 충분했고, 배구라는 종목에 새삼 흥미를 갖게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배구선수로써 많은 흔적을 남겨온 김연경 선수의 발자취를 처음부터 찬찬히 따라가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이번시간을 준비하였다. 김연경 선수의 데뷔전과 데뷔후의 선수이력을 지금부터 찬찬히 살펴보도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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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김연경선수 / 출처 : kbs

『키 작았던 김연경선수, 프로데뷔하여 세계무대로 진출하기까지』

1. 김연경 선수 프로데뷔하기 이전 발자취

ⓛ 배구선수의 길을 걷게된 계기

김연경 선수는 경기도 안산에서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배구선수였던 6살위 큰 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막내딸이 배구선수의 길로 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큰 딸이 혹독한 훈련으로 고생한 것을 미리 봤기 때문에, 막내딸도 그런 고생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했지만 김연경 선수의 뜻은 완강하였고, 그렇게 김연경선수는 배구선수의 길을 걷게된다. 

② 김연경 선수 중학교 때까지는 벤치멤버로 전전.

김연경 선수는 서초때는 키가 142cm정도였고, 중학교 1학년때까지만해도 키가 150cm정도였다. 키는 중학교 3학년이 될때까지 170cm이 넘지 않았다. 덕분에 벤치멤버로 전전하게된다. 출전을 하더라도 작은 키때문에 리베로 포지션을 담당하곤했다. 사실 이때는 김연경 선수는 배구를 그만두려했다. 하지만 옆에서 김연경 선수를 지켜봐온 김동렬과 부모님은 그녀를 만류했다. 손, 발이 크니 언젠가 키는 분명 자란다라는 이야기와 함께말이다. 김연경 선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의지를 불태웠고,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오후 11시에 운동일과를 끝내는게 일상이 되었다. 

③ 고등학교때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다.

김연경은 한일전산여고로 진학하였다. 이때까지 키가 별반 자라지 않아 김연경은 리베로를 전문적으로 할까하여 리베로 전문 훈련을 받기 시작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3년동안 기적이 일어났다. 키가 무료 20cm나 자라난 것. 김연경 선수는 공격수로 포지션을 옮기기 되었고, 2004년, 즉 고등학교 2학년때 청소년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된다. 그뿐아니라 2004년 청소년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수정했으며 고 3인, 2005년엔 U-18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본선 득점 2위, 공격 성공률은 7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5년엔 그랜드챔피언스컵에서 성인팀으로 합류하게된다. 이 당시 김연경선수의 키는 186cm였고 몸무게는 70kg이었다. 흥국생명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자마자 바로 김연경 선수를 지목하게된다. 등번호는 한일전산 시절부터 써왔던 10번이었고, 이후 흥국생명의 이런 선택은 소위 대박을 터트리게된다.

2. 김연경 선수 프로데뷔후 발자취

ⓛ 2005-2006 시즌

한국 여자배구의 아이콘이라고 하면 단연 김연경이 꼽혔다. 키가 188cm 호리호리한 몸매였으며 고교를 갓 졸업하여 앳된 얼굴로 코트를 장악 강렬한 2점 백어택과 타점율이 높은 스파이크가 기본장착인 김연경은 최하위였던 흥국생명을 91년 창단 이후 첫 통합우승으로 이끌게된다. 혹자는 이는 흥국생명의 승리가 아니라 김연경의 우승이라고 밝힐정도였다. 그녀는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정규리그 MVP, 챔프전 MVP를 거머쥐었다. 이뿐 아니라 서브상, 독점상, 공격상등 데뷔시즌에 6관왕을 달성했다. 

2005-2006 시즌 김연경선수

② 2006-2007 시즌

김연경은 지난시즌 이후에 무릎수술을 받았다. 게다가 신체조건이 우월한 외국 용병들이 각팀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김연경 선수에게 매우 어려운 환경과 시기라고 대부분이 관측했다. 하지만 그녀는 흥국생명의 2년 연속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6~2007 V-리그 여자부 챔프전에서 4경기 동안 혼자서 117득점을 했다. 김연경은 두시즌 연속 MVP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다. 시즌이 끝난 후에도 4월 28일부터 이틀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한·일 V리그 TOP매치에 출전하게된다. 하지만 팀의 전패를 막지는 못하였고, 이후 왼쪽 무릎연골이 파열되어 수술을 받게된다. 작년에도 오른쪽 무릎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벌써 시즌이후 두번째 수술이다. 4개월 재활을 마차지마자 2007년 FIVB 월드컵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대부분의 경기를 뛰게 된다. 김연경은 멈추지 않았다. 월드컵 일정이 끝나고도 소속팀으로 돌아와 07-08 시즌을 위해 훈련을 재개한다. 

③ 2007-2008 시즌

입단후 처음으로 통합우승을 놓친 시즌이다. 사실 김연경은 그동안의 쌓여온 노련미까지 더해져 손목스냅을 활용하는 타법을 구사하는 등에 무서운 공격수로 성장을 하고 있었다. 그에 힘입듯 흥국생명의 압도적인 승률 역시 계속되는 듯했다. 그러나 당시 브라질 출신 외국인 선수 마리 용병의 부진으로 김연경 공격 점유율이 몰리게 된다. 당시 정규시즌 김연경의 득점은 649득점이었고, 마리는 359득점이었다. 지나치게 몰리는 공격점유율과 2년 연속 받았던 무릎수술 후유증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김연경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엔 입단 후 처음 GS칼텍스에게 덜미를 잡혀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놓치고 마는 아쉬움을 남기고 만다. 

2008-2009시즌 v-리그 결정전 김연경선수

그리고 리그와 챔피언 결정전으로 무리한 김연경 선수의 무릎은 앞서 두번의 수술로 약해질대로 약해진 상태, 결국엔 이번 시즌에도 오른쪽 무릎 관절이 파열되어버렸고, 3년 연속 다시 수술대에 오르고 만다. 무릎 관절이 파열되고 수술대에 올라야 되는 상황임에도 김연경 선수는 세계 예서늘 참가하고 와서 수술을 받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흥국생명 프런트는 선수보호가 우선이었다. 결국엔 김연경은 국가대표 소집 불응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여기엔 좀더 자세한 내막이 있었다. 김연경 선수 및 황연주 선수의 수술로 인해(황연주 선수도 수술로 인해 국가대표 소집 불응이 결정) 협회와 흥국생명 구단과의 마찰이 크게 있었던 것이다. 김연경을 진찰한 병원은 오른쪽 무릎 연골이 2cm정도 찢어졌다라는 진단을 내렸는데, 4개월간의 재활기간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이정철 대표팀 감독과 협회 관계자들은 다른 지정병원에서 재검사를 해보자며 제안을 해온다. 하지만 김연경과 구단관계자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이튿날 이정철 대표팀 감독과 협회 관계자들이 수술하기전 김연경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간다.

부상정도를 다시 확인하고 수술을 늦출수 있으면 늦추자고 김연경을 설득하기 위함이다. 이정철은 당시 "김연경은 올림픽에 뛰고 싶어한다. 1차 검진 당시 수술을 조금 미뤄도 괜찮다 들었다. 선수를 혹사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중요 경기에만 투입해 부상이 심해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쓸 생각이다." 라고 말하며 흥국생명 담당자를 계속 설득해나갔다. 하지만 결국 김연경 선수를 담당할 전문의가 직접 나서 "당장 수술하는 것이 선수에게 낫다." 라는 의견을 내놓았고 결국엔 이정철과 협회 관계자들은 물러섰고, 김연경 선수는 수술을 받게되었다고 한다.

④ 2008-2009 시즌

흥국생명의 김연경은 다시 우승컵을 안았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를 1위를 했음에도 GS칼텍스에게 챔프전 우승 영광을 내줬어야 했는데, 여러가지 일이 있고 어려움이 많았던 이전 시즌을 보낸 흥국 생명은 결국 다시 한국여자프로배구 정상에 우뚝서게 된다. 당시 흥국생명은 시즌 중반까지 GS칼텍스와 리그 1위를 다퉜다. 사실 감독이 교체되어 팀의 결속력 약화, 용병 카리나 오카시오는 충수염 수술로 인해 결장, 허벅지 부상으로 힘들어하던 한송이를 투입하는 등 여러가지 악재에서 4~6라운드에서 4승 8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뒀고 정규시즌을 3위로 마감하였다.

2008-09시즌 김연경선수

물론 당시에도 김연경은 공격 전부문 상위권에 올라와있어 V-리그 여자부 최고 공격수임을 당당히 입증한다. 그뿐만 아니라 해당시즌에서 남녀부 통틀어 공격득점 2000점을 돌파하는 기록까지 세운다. 이내 1년만에 다시 붙게된 GS칼텍스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공수양면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결국 흥국생명을 우승의 자리에게까지 끌어올리게된다. 이런 엄청난 공로를 인정 받아 김연경은 MVP기자단 투표에서 28표중 무려 24표를 받았으며 2년만에 챔피온 결정전 MVP를 김연경이 수상하게되었다.

김연경에겐 벌써 세번째 챔피온 결정전 수상이었다. 이뿐 아니라 한·일 탑매치에서 일본의 히사미츠 스프링스와의 경기가 있었는데 이때 한국팀이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당시 4세트 21-21 상황, 이때 김연경은 연속 4득점을 올리는 등 눈부신 활약을 보여줬는데, 하마다 감독은 이런 김연경을 보며 "오늘 가장 인상적인 선수였다." 라는 말을 남겼다. 다음날 경기 역시 24점을 기록, 탑매치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고, 상대팀이었던 도레이 애로우즈 칸노 고이치로 감독도 "김연경 공격력은 인상적이다." 라는 등의 찬사를 보냈다.

김연경은 2009년이후 일본에 진출하여 세계무대로 가기 위한 발돋움을 시작하게된다. 2009년이후엔 세계무대시작이다.  그녀에 대한 발자취가 계속 궁금하다면 아래의 글을 확인하길 바란다. :D

 

세계에서 주목받은 여자배구 국가대표 김연경 선수

김연경 선수가 2020도쿄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발언, 김연경선수은퇴전일수 있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르비아에게 패했으나 김연경선수는 상대팀을 축하해주었다. 국가대표 배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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