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선수가 2020도쿄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발언, 김연경선수은퇴전일수 있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르비아에게 패했으나 김연경선수는 상대팀을 축하해주었다. 국가대표 배구선수은퇴를 하지만 국가대표은퇴와 무관하게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선수경력은 놀랍기만 하다. (여러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므로 은퇴는 안할수도있다.) 아래글에서 확인했던 프로 데뷔 전에서부터 국내 데뷔후 활동에 이어, 이번엔 그 이후 활동 국내 활동에서 그치지 않고 해외로 진출한 김연경 선수에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009년 이전까지의 김연경선수의 경력이 궁금하다면 아래글을 통해 확인하면 된다. 자, 2009년 이후의 김연경 선수 경력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세계 용병으로 발돋움하는 김연경선수
1. 세계무대 그 시작은 일본진출
ⓛ 2009년 일본진출
김연경 선수는 나이가 더 들기전에 해외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말을 종종했다. 그리고 여론 역시 김연경 선수는 국내 리그에서 뛰면 안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김연경 선수로 인해 밸런스가 붕괴될만큼 넘사벽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결국엔 김연경 선수의 외국 리그 진출의지와 여론 형성등으로 인해 김연경 선수는 2009 오프시즌 외국 리그에 진출을 하게된다.
사실 김연경 선수의 이런 열망은 06-07 시즌부터 진행되온 터였다. 이탈리아 여자배구 리그에 뛰고 싶었지만 황현주 감독은 유럽과 남미선수들 보다 파워가 떨어진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라는 의견등으로 그녀의 진출을 허락하지 않았고, 사실 흥국생명 팀의 공격과 수비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던 김연경의 해외진출의 허락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9년 챔피언결정전에서 흥국생명은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고, 이 뒤 흥국생명의 독주시대가 계속될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김연경의 부재에도 팀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여론도 형성되어,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해외진출을 모색하게된다.
이 당시, 구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김연경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구단은 터키, 이탈리아, 그리스, 일본 구단이 있었다. 들리는 후문으론 이탈리아는 흥국생명측에 25만 유로, 즉 당시 환율 5억원 가량의 연봉을 주고 김연경을 데려가려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흥국생명으로 받았던 그녀의 연봉은 1억 2천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녀에 대한 가치평가가 얼마나 높았는지는를 알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흥국생명은 해외 진출 조건으로 김연경 주전 출장 보장과, 연봉은 한 관계자에 따르면 순 연봉이 4억원 이상은 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김연경 선수가 완전 이적하는 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김연경 선수를 일정기간만큼만 임대하는 방식이었고 이는 해외무대에서 더 큰 경험을 쌓고 돌아 다시 흥국생명 팀으로 뛰기 바라는 마음에 이 방식을 선택했다.
이내 해당 시즌은 종료되었고, 김연경은 해외진출을 하게된다. 2009-2010 시즌부터 흥국생명 자매팀이였던 일본 JT마블러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만 김연경을 영입하고자 했던 구단은 무려 4개 이상이었다. 하지만 JT마블러스와 계약이 맞애전 이유는 국가 대표팀 차출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항간에 떠도는 말로는 흥국생명의 자매구단이어서 그렇다라는 말이 돌기는 했었다. 계약 형태는 김연경 선수의 연봉은 4억, 1년 임대 형태로 진행되었다. 1년 임대동안 해당 시즌이 끝나고 JT 마블러스가 원할시 흥국생명과 다시 협상하여 임대할수 있는 조건으로 계약이 이루어지는 형태다. 그러니 일본에서 뛰더라도 김연경 본 소속은 계속 흥국생명인셈이다. 만약 1년뒤 JT마블러와 협상이 체결이 안되면 국내리그로 복귀할테지만 김연경 선수의 뛰어난 활약이 입증된다면 유럽무대로 진출할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JT마블러스는 리그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이었다. 하지만 팀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다케시타라는 명세터가 있었고, 뛰어난 감각을 지닌 리베로 이노우에 고토에등 있어 세터 포지션과 수비를 탄탄하게 지켰다. 하지만 공격력 면에서 큰약점이 있었기에 리그 하위권을 전전하게 된것이다. 그렇게 김연경 선수의 일본무대가 시작되었다.
② 2009-2011 최고 용병이라는 평가를 받다.
김연경은 2009-2010 시즌 전년도 최하위 팀 JT 마블러스를 25연승은 물론 정규리그 1위에 안착과 파이널 준우승 및 2010-11시즌 정규리그에서도 1위, 마지막으로 JT마블러스 팀 창단이래 첫 파이널 우승까지 이끌어 김연경 선수의 가치를 한껏 입증해냈다. 김연경은 JT마블러스의 대 에이스 였으며, 일본 V.프리미어리그 최고 용병이라는평가까지 받았다. 당시 V.프리미어리그 해설진은 "김연경은 용병이 아니었던것 같다. 본래
JT선수인것 같다. 마치 처음부터 그 팀이었던것처럼 조직력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선수다. 그녀를 볼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기장에 올 가치가 충분하다." 라고 말했으며, 덴소 에어리비즈 감독 다츠가와 미노루은 "김연경은 일본내에서도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다"라는 찬사를 남겼고 히사미츠 스프링스 리베로 사노 유코는 "김연경은 나쁜 토스도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선수" 라고 말했다.
김연경은 정규리그 모든 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했다. 경기당 평균 24.9점을 올리는 활약을 펼쳐 소속팀은 정규리그 우승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JT마블러스는 10팀중 9위로 전년도 최하위권 팀이었다. 하지만 김연경 영입이후로 히사미츠 스프링스에게 패하기 전까지는 25연승을 기록했다. 당시 일본 V리그 출범이후 연승 기록은 2001년 NEC 레드 로켓츠가 기록한 31연승에 이은 2위의 기록이다. 덕분에 다른 팀들은 이 연승 기록을 깨기 위해 꽤나 혈안이 되었었다.
정규리그가 끝나고 김연경은 총 696점 득점을 기록했다. 득점상 주인공이 됨은 물론 공격성공률 부문 3위에 올랐고 세트당 공격성공 횟수부문 1위 및 블로킹 부문 10위를 기록했다. 다만 아쉬운점은 도레이 애로우즈와의 경기에서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는 점이다. 당시 상대팀이었던 후쿠다 야스히로 코치는 "김연경을 움직임을 막기위해 고민했다" 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파이널까지의 공을 인정받아서 준우승 팀의 최우수 선수에게 주는 탐투상과 베스트 6에 선정되었다. 참고로 김연경이 빠진 흥국생명은 2009-2010 시즌 10연패라는 기록을 세웠다. 09-10시즌은 4위, 10-11시즌은 준우승, 11-12 시즌은 5위에 머물렀다. 과거 명성에 비해서는 꽤나 저조한 성적이었다.
③ 2010년 프로배구컵대회
김연경은 소속 신분은 흥국생명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수원에서 열린 2010 IBK 기업은행컴 프로배구대회에 참가를 하게되었고 8월 31일 도로공사와의 승부에서 3-2 역전승을 거두며 개인 38득점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게된다. 덕분에 09-10시즌에 4위에 마쳤던 흥국생명을 우승으로 이끌고가 기자 투표에서 33표중 28표를 받아 MVP를 수상하게된다. 2010년에 김연경의 복귀론 불거져 나왔는데 이때 여자부 5개 구단은 임대된 선수가 원 소속 구단으로 복귀할 경우엔 잔여경기의 25%만 뛰면 1시즌을 인정해주는 룰을 만들었는데 이를 '김연경 룰'이라고 불렀다.
2. 세계용병 김연경
ⓛ 2010-2011 시즌
V-리그에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이 있다. 이는 타팀의 견제와 분석으로 더욱 견고해진 해당선수에대한 압박으로 활약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일본 리그 2년차 용병 김연경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고 그만큼 많은 의견들속에 김연경은 이전 시즌만큼 활약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김연경은 당시 시즌 초에 신종독감으로 인해 고생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독감으로 인해 경기결장을 하였다. 비시즌엔 각종대회에 대부분 출전하여 체력적으로 무리한점이 컸다고 한다. 초반 2 경기를 결장하고 나서 12월 4일 파이오니아전과 5일 NEC전에서 교체 멤버로 투입되었으나 결국 12월 11일 과로와 감기 몸살로 병원에 입원해야했다. 1주일정도 병원에 입원해서 휴식을 취하고나서 김연경은 성탄절에 열린 히사미츠전에 출전을 하였다. 그리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JT마블러스는 다시 한번 더 정규시즌 1위로 마무리하고 팀창단 이후 첫우승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연경은 베스트 6와 최우수선수에 선정된다. 이후 창단 54년만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에이스 김연경은 JT마블러스와 계약만료로 이적 소식이 전해 질때엔 현지팬들이 많이 아쉬워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뛰는 2년동안 리그 간판스타가 되어왔을 정도로 그녀의 실력은 팀원과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출국하는 공항에서 동료들은 모두 나와 배웅을 하였고 친하게 지냈던 센터 야마모토 아이는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김연경은 JT마블러스 계약 만료와 함께 유럽무대로 진출하게된다. 과연 그뒤의 김연경 선수의 행보는 어땠을까? 궁금하다면 아래 다음편 글을 확인해주길 바란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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