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도쿄올림픽을 통해 김연경 선수를 지켜본 외신은 김연경선수의 활약을 집중조명했다. 국제배구연맹은 10억명중 단 한명의 스타라는 극찬을 남겼고 올림픽메달은 획득하진 못했으나 상대를 축하하는 김연경의 모습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새삼깨닫게 해주었다. 김연경은 은퇴의사를 밝히기는 했으나 의논 여부가 많아 단정할수는없다라는 말을 남겼으니 은퇴여부는 좀더 지켜볼일이라 생각된다. 아래 글은 김연경선수의 국내데뷔전과 데뷔후 활동, 그리고 일본 진출까지의 내용이 있다. 일본에서의 김연경 선수가 궁금하다면 아래글을 통해서 확인하길바란다. 자, 이젠 본문인 유럽을 진출한 김연경 선수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김연경선수의 실력은 유럽에서도 통했을까?
1. 유럽무대로 진출한 김연경
① 페네르바체 구단 영입
일본리그내에서 김연경은 최고용병으로 인정받았다. 누구 뭐라해도 JT마블러스를 챔피언 자리까지 끌어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조제 귀마레스 감독은 계약이 만료된 김연경을 기다렸다는 듯이 영입했다. 당시 페네르바체를 이끌던 감독인데 이 감독은 일본에서 활약하는 김연경을 보며 훗날 세계최고가 될 선수라고 말하며 페네르바체 회장에게 적극 어필했다고 한다. 덕분에 JT마블러스와의 임대계약이 2011년 5월에 종료되었는데, 다른 소속팀을 알아보던 김연경을 바로 데려오기 이른다.
여자 배구 무대에서 터키 아로마 리그는 유럽 최대의 빅 리그중 하나다. 김연경 선수의 적응여부가 관건이라, 페네르바체와도 1+1계약을 맺는다. 사실 월드클래스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많았으나 일본에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거포라고 칭송 받은 만큼 유럽에서도 그녀가 두각을 나타낼거라는 기대가 상당했다. 페네르바체가 제시한 연봉은 일본에서 받았던것보다 무려 2~3배나 된다고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아파트 뿐만아니라, 통역과 차량까지 모두 제공되었다.
입단식은 6월 13일 이스탄불 페네르바체 구단 프레스룸에서 진행됐다. 입단식에는 페네르바체 구단 관계자와 흥국생명 권광영 단장 및 현지 언론등이 참석하였다. 바비올렛 두카 단장은 김연경 선수를 평하길 각종 세계 대회에서 김연 선수를 눈여겨 보았고, 영입을 원했다. 공격과 수비에 능한 어린선수라고 평하며 기대가 정말 크다고 말했다.
② 2011-2012시즌
당시 세계적인 선수만 모아놓은 팀이기에 귀마레스 감독의 적극적인 오퍼에 김연경이 갔으나 벤치워머로 전락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컸었다. 게다가 유럽에서 성공한 공격수 동양인 선수는 단 한명도 없었던 부분도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결론은 우려에 불과했다. 김연경은 팀의 절대적인 에이스 공격수로 활약한다.
개막전 격인 슈퍼컵에서 주전센터 나즈 아이데미르 선수가 협회 경고로 빠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적이 있었다. 공격수들이 힘을냈지만 나즈의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하지만 김연경은 그런 위기속에서도 블로킹 3개와 15득점을 올려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뤘다.
터키 아로마리그에서 시즌 무패로 정규리그 1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주전 선수 몇병이 부상을 당해, 플레이오프 최종 3위에 머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게다가 터키리그는 당시 용병 제한이 2명까지였다. 그래서 어밴져스급 용병진을 데리고 있던 페네르바체는 꽤나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CEV챔피언스 리그 3월 25일 결승에서 프랑스 RC 칸느를 상대로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페네르바체 CEV챔피언스리그 첫우승이었다. 김연경은 파이널 경기에서 서브득점 3개, 블로킹 2개, 공격 23득점으로 공격성공율 51%로 맹활약을 하여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전날 4강전은 32득점으로 공격성공율 46%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김연경은 대회 MVP와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하였고 명실상부 세계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올랐음을 알리게 되었다.
③ 2012-2014 V-리그 흑역사1
김연경과 인청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간에 김연경의 이적문제로 발생된 갈등이다. 선수의 '자유 이적 권리'와 구단의 '선수 운영 권리' 가 대립되어 2년이 넘게 벌어진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연경은 세계무대에서 활약할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그에 반면 흥국생명은 18-19시즌 통합우승 전까지는 비호감 구단으로 찍혀 팬들에게 오랜 지탄을 받게된다. 2012년 유럽 금융위기로 유럽 배구계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페네르바체 주전급 선수들이 이때문에 러시아 리그, 아제르바이잔 리그로 옮겨가고 있었고 김연경 거취에대한 이적설도 끊이지 않을때였다. 하지만 결국 김연경은 페네르바체와 2년 재계약을 한다. 구단내에서 팀내 최고 대우를 받으며 잔류 결정을 하기로 한것이다. 하지만 이때 에이전트를 둘러싼 흥국생명과 마찰이 발생되는데 흥국생명과 김연경측의 의견은 대립을 하게되고 이 지리한 싸움은 몇년을 끌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흥국생명측은 "아직 김연경이 김연경 룰에 의해 국내 v리그에서 FA자격을 얻지못했다. 이때문에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원소속구단이다" 라는 거였고 김연경은 흥국생명에서 4년을 뛰었고 해외에서 3년간 임대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임대된 기간도 흥국생명에 몸담고 있는 기간으로 치는 논지를 폈다. 이때 김연경의 임대계약이 체결된 시점에서 KOVO규정상 국외의 구단에 임대 계약시 선수신분에 대한 조항자체가 없었기에 양쪽 모두 할말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선수의 신분을 두고 대립했던 문제가 구단의 금액 착복문제로까지 겹치게 되었고 이싸움은 가면 갈수록 지저분한 싸움으로 변하고만다.
대한배구협회에서는 선수, 구단, 리그 어느한쪽의 의견을 편향되게 들어줄수 없으므로 국제배구연명(FIVB) 유권해석으로 넘기게된다. 국제배구연맹은 김연경과 흥국생명의 재협상을 명령했다. 이는 계약이 끝났음에도 해당선수의 소속팀이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 단년계약으로 갱신하려는 행태와 FA신청 연한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임대라는 이름으로 선수등록 권리는 가지려는 한국 배구계의 선수계약 방식에 대한 비판을 염두해준 국제배구연맹의 의중이다. 그러나 나라별 롤 존중이 우선이기에 당사간의 대화를 통한 해결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것도 잠시 FIVB는 결국 흥국생명의 편을 들어주었는데, 이는 흥국생명과 김연경 간의 합의서 내용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합의서는 FIVB의 유권해석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유출하지 않기로 했던 문서이다. (합의서 내용은 김연경에게 불리한 조항이 많았다. 단, 마지막엔 양측은 FIVB의 결정에 따른다는 조항이 있다.) 이에 김연경은 은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고 김연경은 최후의 수단으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를 하겠다고 밝힌다.
그리고 2012년 국정감사때 김연경 사태가 이슈로 떠올라 김연경의 팬들이 중심이 되어 SNS를 통해 정치권에 구명 활동을 벌여줄 것을 촉구했다. 정치권 개입이 시작되었고, 김연경은 2012년 10월 19일 국회 정론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해줄것을 호소했다. 사태가 걷잡을수 없이 커지자, 2012년 10월 22일 대한배구협회는 김연경에게 1년 기한의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을 결정한다.
④ 2012-2014 V-리그 흑역사2
김연경은 선수 신분이 정리가 되지 않은채로 대한배구협회에서 임시로 발급해준 이적동의서를 받고 12-13시즌 페네르바체에서 뛰게된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2013년 오프시즌에 다시 불거졌다.
결국 2013년 7월 1일, 흥국생명은 결국 김연경을 임의탈퇴를 공시하였고 한국배구연맹(KOVO) 는 이를 승인하였다. 임의탈퇴란 이당시 징계수단으로 쓰였던 것인데 방출됨을 뜻한다. 문제는 방출됨과 동시에 해당 구단의 동의가 없으면 다른 구단의 이적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수단인것이다. 이때문에 흥국생명에 대한 여론이 꽤나 좋지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한화이글스는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대승적차원에서 허락해줬기 때문에 더욱더 비교가 되어 더욱 여론은 흥국생명에게 좋을수 없었다. 사실 이런 흥국생명의 행보는, 내가 가질수 없다면 아무도 가질수 없다라는 마인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욱 문제는 이사건들로 인해 세계급 에이스가 국내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흥국생명에게만 책임을 묻는 여론이 있던 것은 아니고 김연경이 리그의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책임도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⑤ 김연경 선수의 은퇴선언
2013년 7월 15일 김연경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연경은 7월 25일까지 자신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다면 국가대표팀 은퇴도 불사하겠다라며 선수로서 낼수 있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2013년 9월10일 FIVB에서 김연경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김연경의 2013-2014 시즌의 소속팀은 흥국생명이다.
(2) 페네르바체에선 상한선 22만 8,750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해야 하며, 흥국생명은 그 이후 김연경의 행보를 막을 수 없다.
(3) 김연경이 2013~2014시즌 이후 흥국생명과 계약을 맺지 않을 경우, 다음 시즌은 원 소속 구단이 없어진다.
사실 이 최종 결정은 페네르바체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자문 변호사단을 꾸린 것으로 시작되었다. 자문 변소사단은 스포츠 국제룰을 근거로 들었고 국제배구연맹에게 흥국생명과 김연경간의 계약서가 없음을 어필하여 판결을 대게 뒤집지 않는 국제배구연맹 선례에도 국제배구연맹은 판결을 바꾸게된다. 하지만 김연경의 소유권을 계속 주장하려는 흥국생명은 FIVB결정에 반발하며 재심을 요청하였고 페네르바체는 김연경과의 계약을 정당하게 인정받아 진행하고 싶기에 이 재심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2014년 2월 7일 국제배구연맹이 김연경이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인정했다는 기사가 나오게된다.
결국엔 김연경의 원소속구단이 계속되고 싶었던 흥국생명을 FIVB가 지워주게 되었고, 덕분에 김연경의 이적료는 대한배구협회가 챙겨가게 된다. 오히려 김연경의 해외이적을 방해하는데 힘썼던 배구협회는 생각지도 못한 이적료가 생긴셈이었다.
이후에 김연경 이적 파동은 흥국생명 구단, 대한배구협회, 한국배구연맹은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얽히고 설킨 문제가 터진것으로 밝혀졌다. 결론을 말하자면 기업과 협회에서 선수 개인을 자기들 마음대로 움직여 소위 콩코물을 얻어먹으려다가 우리나라를 국제적 망신을 시킨 사건이라고 보면된다.
이후 김연경은 해외이적시 완벽한 FA가 되었고 옆에서 큰힘이 되전 페네르바체와 재계약을 하여 당시 같이 싸워나갔던 의리를 지키게된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떠나자 리그 하위권을 머무는 팀이 되었다. 하지만 이재영을 드리프트로 선발하고, 박미희 감독과 함께 18-19시즌에 10년만의 챔피온 결정전 우승을 이루게된다. 그후 국내 FA기간을 채우지 못했고, 개정된 룰에 소급적용이 되지 않아 김연경은 코로나 19로 인해 유럽리그 재개도 언제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결국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2020년 6월 흥국생명에 복귀하게된다.
사실 이는 흥국생명이 2020년이 넘어서는 시점에서도 국내에선 흥국생명의 임의탈퇴선수로 묶어두었기 때문이다. 흥국생명이 임의탈퇴를 풀어줬으면 김연경이 타구단과 계약이 가능했겠지만 국제배구연맹에서는 소유권을 인정할수없다는 결론이 나왔는데도 불고하고 국내배구연맹과 흥국생명은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연경 선수는 흥국생명으로 들어가야헀다.
오늘은 김연경선수가 해외진출후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나는 순간과 그후 흥국생명과의 불화과정이 있었던 내용을 다뤘다. 다음 시간에는 그 이후 김연경 선수가 해외 활동을 한 경력등을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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